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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화장실에 대하여()
  • 작성일2012/10/26 11:13
  • 조회 557
해당 글의 작성 날짜 : 2006/11/10 23:55:49

 

 

 

 

 

얼마 전 장애인인터넷 신문을 검색하다가 장애인화장실에 대한 기사를 발견하고 한참동안 그 기사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 차별이 아니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결이 나왔다는 기사였다.

장애인 권익 문제, 특히 접근권과 이동권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한 장애인이 수원시가 지난 3월 준공한 수원시청 별관 2층에서 8층까지 남녀 공용 장애인화장실을 설치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진정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건축물의 구조상의 한계 및 예산의 문제가 있어서 부득이 남녀 공용화장실을 둔 점이 인정된다”며 기각했다는 것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 판결은 논리적으로 상당한 모순을 안고 있어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진정사건으로 인해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이 차별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하는 소임을 맡게 된 것인데, 차별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로 하고 건축물 구조상의 한계 및 예산의 문제를 주요한 판결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로서도 건축물 구조상의 한계 및 예산의 문제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으며,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이 차별이라는 판결이 나올 경우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명백한 차별인 것과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실행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차별임을 인정하고 해결하고자 노력을 하는 것과 차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차원이 다르다고 여겨진다.

어차피 차별이라는 판결이 나오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로서는 권고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데도 차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장애인(장애여성)의 권리에 대한 불감증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애남성으로 여겨지는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한마디로 왜 사소한 일에 집착하냐는 것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데 화장실 좀 남녀가 같이 쓰는 게 대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장애여성인 나로서는 남녀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사소한 일이 결코 아니며, 더구나 그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문제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아주 긴밀한 관련이 있는 문제여서 장애남성들마저 장애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또다시 확인한 것 같아 씁쓸했다.

어쩌면 화장실 문제는 우리 장애인들이 현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제약과 장벽 중 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교육과 이동, 접근과 취업을 근원적으로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내 주변에는 화장실 문제 때문에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이 굉장히 많다. 게다가 장애여성의 경우에는 같은 조건을 가진 장애남성에 비해 몇배 더 어려움을 경험한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턱과 계단은 장애남성과 여성 공통의 문제일 텐데 장애여성이 이처럼 장애남성에 비해 훨씬 더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아마도 화장실 문제가 아닐까 싶다. 웬만한 대형 빌딩은 물론이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는 곳에도 장애여성 전용 화장실을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왜 비장애인을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 화장실을 구분하면서 장애인의 경우에는 남녀가 같은 화장실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까?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직장생활도 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아직도 화장실 문제를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장애여성의 문제에 공감하고 작은 것부터 바꿔나갈 수 있으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벽이 안팎으로 참 많은 것 같다.

-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