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화장실 이야기
파란종이줄까 빨간종이줄까? 차리리 풀잎을 주오!(07/05/05)
- 작성일2012/10/29 14:06
- 조회 737
해당 글의 작성 날짜 : 2007/05/05 18:56:30
탄강(誕降)과 더불어 서울이란 곳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 마누라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중 하나가 시댁에 가는 일이다. 명절 증후군이니 하는 증상이 내 마누라에게도 없다고 나는 장담하지 못하겠으나, 이런 그에게 김천행을 할 때마다 특히나 고통스런 일은 화장실이다.
아다시피 두메산골 깡촌 출신인 나는 아직 고향집에는 수세식 화장실이란 문화를 모르는 곳이라, 비데인지 뭔지를 선전하는 문구가 요란함에도 여직 전통식 화장실을 고수하고 있거니와, 이 전통실 화장실 문화 얘기가 나온 김에, 이런 문화가 이채로울 수밖에 없는 미국넘들은 전통식 화장실에서의 우리의 자세를 일러 ‘김치 스쿼드’(kimchee squad)라 부르는 일을 봤다.
나는 군대생활을 ‘카투사’로 했는데, 한국문화를 접하게 된 미국인들은 늘상 그들에게 없고 우리에게만 독특한 문화적 전통에다가 툭하면 ‘kimchee’라는 수식어를 붙이거니와, 리어커를 ‘kimchee cart’라 하는가 하면, 경운기를 ‘kimchee truck’라고 하는 따위가 다 그런 것들이라.
전통식 측간 문화를 모르고 자란 마누라가 얼마나 이를 두려워하는지는 더 이상 말을 않겠노라.
나는 8살 무렵까지는 초갓집에 살았는데, 이 초갓집 문화에서 연례 행사가 있으니, 대체로 봄이면 초가를 다시 이곤 했다. 나아가 이런 초갓집 문화에서는 화장실 뒤닦이 또한 대체로 짚을 이용하는 일이 압도적이었거니와, 나도 짚으로 닦고 자란 세대에 해당한다. 이후 초등학교-중학교 의무교육이 도입되면서, 교과서를 활용한 교과서 종이 문화로 뒤바뀌게 된다. 이 교과서가 한 편에서는 딱지 문화로, 다른 한편에서는 화장실 문화에서도 변모를 가져온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교과서로 대표하는 근대화 바람이 거센 가운데서도 여전히 들녘에 나가 일을 할 때면, 짚이 아니라 풀잎을 이용하는 전통은 지금도 내 고향에선 계속되고 있거니와, 가장 애용되는 도구가 칡잎이다.
내가 며칠 전부터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지괴(志怪)소설인 《幽明錄》이란 문헌을 다시금 읽고 있거니와, 몇 년 전에 이를 완파할 때는 완미하지 못한 대목들을 요즘은 숙지하면서, 또, 때로는 즐기면서 읽고 있다.
이에 수록된 일화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게 있다.
건덕현(建德縣) 백성인 우경(虞敬)이 측간에 갔더니 문득 어떤 사람이 손 안에다가 풀을 집어 그에게 내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적은 없으나 이와 같은 일이 한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다시 측간에 갔더니 오래도록 풀을 주는 사람이 없고 대신 측간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엿보니 마침 죽은 사내종과 여자종이 서로 풀을 먼저 주겠다고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내종이 마침 먼저 주겠다고 앞장서니 여자종이 뒤에서 그 사내종을 후려쳤는데 이로 인해 갑자기 두 사람이 싸우게 된 것이다. 잠시 동안 있다가 우경이 측간을 나섰으나 여종과 사내종이 으르렁거리며 싸움을 그치지 않으니 우경이 그들을 꾸짖으니 갑자기 불이 꺼진 듯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해당하는 원문은 다음과 같다.
建德民虞敬上廁, 輒有一人授手內草與之, 不睹其形, 如此非一過. 後至廁, 久無送者, 但聞戶外鬥聲, 窺之, 正見死奴與死婢爭先進草, 奴適在前, 婢便因後撾, 由此輒兩相擊. 食頃敬欲出, 婢奴陣勢方未已, 乃厲聲叱之, 奄如火滅, 自是遂絶. 御覽一百八十六
이 이야기를 보면 언뜻 빨간 휴지줄까? 파란 휴지줄까? 라고 해서 한 때 이 땅의 교단을 물들인 유명한 사건을 연상케 하지만, 이런 빨간휴지 파란휴지는 최근 민속학계 연구성과(김종대가 대표적이다)에 의하면, 일본 교육계의 직수입품이며 우리 古來의 전통과는 무관하다 한다.
원문을 보면, 측간을 ‘厠’(측)이란 말로 표현하거니와 이는 요즘도 厠間(측간)이란 말로 살아있다.
우경(虞敬)이란 사람이 이런 측간에 가는 행위를 上厠(상측)이라 했거니와, 이 문구를 통해 우리는 이 우경의 집에서 측간은 본채를 기준으로 북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上이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방향을 함유한 말이라, 지금도 서울에 가는 행위를 上京이라 하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우경의 집 측간만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위진남북조시대 일반적인 가옥 배치에서 화장실 위치는 이러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혹여 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분은 제보 바란다.
식경(食頃)이란 말은 요즘도 연세 드신 분들에게서 가끔 들을 수 있는 말이거니와, 한 식경 지나서 등의 표현에서 만난다. 食頃이란 한 끼 식사를 끝낼 만한 시간이란 뜻으로, 옛날에는 식사를 후다닥 해치웠으므로 잠깐 뒤에 라는 정도를 의미한다.
우경이란 사람이 귀신들을 혼내는 행위를 ‘叱’(질)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거니와, 이는 대체로 말로 꾸짖은 일을 말한다. 연암 박지원의 저명한 소설로 제목이 ‘호질’(虎叱)이 있거니와, 당시 양반사회 허위를 호랑이 입을 빌려 질타하는데, 虎叱은 글자 그대로는 호랑이의 호된 꾸지람 정도를 의미한다.
“奴適在前, 婢便因後撾”라는 표현이 보이거니와 이는 사내종이 먼저 우경에게 뒤닦이를 주겠다고 먼저 나서자 이에 격분한 여종 귀신이 그를 뒤에서 후려쳤다는 뜻이다. 撾는 ‘과’라고 발음하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手+過일지니, 이에서 過는 발음을 표시하며, 手가 의미를 한정하니, 손으로 후려친다는 뜻임을 직감할 수 있다.
앞선 블로그 글에서 나는 便이라는 글자가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부사적 용법으로 두루 사용된다고 하면서, 그에서 3개 용례를 들었거니와 이 경우에도 이에 해당하니, 전후문맥으로 보건대 사내종이 선수를 치려한 데 격분해, 여종이 갑자기, 혹은 순식간에 그를 후려쳤다는 의미 정도로 볼 수 있으니 便은 문득, 혹은 갑자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위진남북조시대 문장에서 부사로 쓰인 便은 옮기지 않은 편이 속이 편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에 함유된 미묘한 어의까지 팽개칠 수는 없다.
암튼, 위 일화에 의하면, 위진남북조시대 뒤닦이용 재료는 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다시피 두메산골 깡촌 출신인 나는 아직 고향집에는 수세식 화장실이란 문화를 모르는 곳이라, 비데인지 뭔지를 선전하는 문구가 요란함에도 여직 전통식 화장실을 고수하고 있거니와, 이 전통실 화장실 문화 얘기가 나온 김에, 이런 문화가 이채로울 수밖에 없는 미국넘들은 전통식 화장실에서의 우리의 자세를 일러 ‘김치 스쿼드’(kimchee squad)라 부르는 일을 봤다.
나는 군대생활을 ‘카투사’로 했는데, 한국문화를 접하게 된 미국인들은 늘상 그들에게 없고 우리에게만 독특한 문화적 전통에다가 툭하면 ‘kimchee’라는 수식어를 붙이거니와, 리어커를 ‘kimchee cart’라 하는가 하면, 경운기를 ‘kimchee truck’라고 하는 따위가 다 그런 것들이라.
전통식 측간 문화를 모르고 자란 마누라가 얼마나 이를 두려워하는지는 더 이상 말을 않겠노라.
나는 8살 무렵까지는 초갓집에 살았는데, 이 초갓집 문화에서 연례 행사가 있으니, 대체로 봄이면 초가를 다시 이곤 했다. 나아가 이런 초갓집 문화에서는 화장실 뒤닦이 또한 대체로 짚을 이용하는 일이 압도적이었거니와, 나도 짚으로 닦고 자란 세대에 해당한다. 이후 초등학교-중학교 의무교육이 도입되면서, 교과서를 활용한 교과서 종이 문화로 뒤바뀌게 된다. 이 교과서가 한 편에서는 딱지 문화로, 다른 한편에서는 화장실 문화에서도 변모를 가져온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교과서로 대표하는 근대화 바람이 거센 가운데서도 여전히 들녘에 나가 일을 할 때면, 짚이 아니라 풀잎을 이용하는 전통은 지금도 내 고향에선 계속되고 있거니와, 가장 애용되는 도구가 칡잎이다.
내가 며칠 전부터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지괴(志怪)소설인 《幽明錄》이란 문헌을 다시금 읽고 있거니와, 몇 년 전에 이를 완파할 때는 완미하지 못한 대목들을 요즘은 숙지하면서, 또, 때로는 즐기면서 읽고 있다.
이에 수록된 일화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게 있다.
건덕현(建德縣) 백성인 우경(虞敬)이 측간에 갔더니 문득 어떤 사람이 손 안에다가 풀을 집어 그에게 내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적은 없으나 이와 같은 일이 한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다시 측간에 갔더니 오래도록 풀을 주는 사람이 없고 대신 측간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엿보니 마침 죽은 사내종과 여자종이 서로 풀을 먼저 주겠다고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내종이 마침 먼저 주겠다고 앞장서니 여자종이 뒤에서 그 사내종을 후려쳤는데 이로 인해 갑자기 두 사람이 싸우게 된 것이다. 잠시 동안 있다가 우경이 측간을 나섰으나 여종과 사내종이 으르렁거리며 싸움을 그치지 않으니 우경이 그들을 꾸짖으니 갑자기 불이 꺼진 듯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해당하는 원문은 다음과 같다.
建德民虞敬上廁, 輒有一人授手內草與之, 不睹其形, 如此非一過. 後至廁, 久無送者, 但聞戶外鬥聲, 窺之, 正見死奴與死婢爭先進草, 奴適在前, 婢便因後撾, 由此輒兩相擊. 食頃敬欲出, 婢奴陣勢方未已, 乃厲聲叱之, 奄如火滅, 自是遂絶. 御覽一百八十六
이 이야기를 보면 언뜻 빨간 휴지줄까? 파란 휴지줄까? 라고 해서 한 때 이 땅의 교단을 물들인 유명한 사건을 연상케 하지만, 이런 빨간휴지 파란휴지는 최근 민속학계 연구성과(김종대가 대표적이다)에 의하면, 일본 교육계의 직수입품이며 우리 古來의 전통과는 무관하다 한다.
원문을 보면, 측간을 ‘厠’(측)이란 말로 표현하거니와 이는 요즘도 厠間(측간)이란 말로 살아있다.
우경(虞敬)이란 사람이 이런 측간에 가는 행위를 上厠(상측)이라 했거니와, 이 문구를 통해 우리는 이 우경의 집에서 측간은 본채를 기준으로 북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上이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방향을 함유한 말이라, 지금도 서울에 가는 행위를 上京이라 하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우경의 집 측간만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위진남북조시대 일반적인 가옥 배치에서 화장실 위치는 이러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혹여 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분은 제보 바란다.
식경(食頃)이란 말은 요즘도 연세 드신 분들에게서 가끔 들을 수 있는 말이거니와, 한 식경 지나서 등의 표현에서 만난다. 食頃이란 한 끼 식사를 끝낼 만한 시간이란 뜻으로, 옛날에는 식사를 후다닥 해치웠으므로 잠깐 뒤에 라는 정도를 의미한다.
우경이란 사람이 귀신들을 혼내는 행위를 ‘叱’(질)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거니와, 이는 대체로 말로 꾸짖은 일을 말한다. 연암 박지원의 저명한 소설로 제목이 ‘호질’(虎叱)이 있거니와, 당시 양반사회 허위를 호랑이 입을 빌려 질타하는데, 虎叱은 글자 그대로는 호랑이의 호된 꾸지람 정도를 의미한다.
“奴適在前, 婢便因後撾”라는 표현이 보이거니와 이는 사내종이 먼저 우경에게 뒤닦이를 주겠다고 먼저 나서자 이에 격분한 여종 귀신이 그를 뒤에서 후려쳤다는 뜻이다. 撾는 ‘과’라고 발음하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手+過일지니, 이에서 過는 발음을 표시하며, 手가 의미를 한정하니, 손으로 후려친다는 뜻임을 직감할 수 있다.
앞선 블로그 글에서 나는 便이라는 글자가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부사적 용법으로 두루 사용된다고 하면서, 그에서 3개 용례를 들었거니와 이 경우에도 이에 해당하니, 전후문맥으로 보건대 사내종이 선수를 치려한 데 격분해, 여종이 갑자기, 혹은 순식간에 그를 후려쳤다는 의미 정도로 볼 수 있으니 便은 문득, 혹은 갑자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위진남북조시대 문장에서 부사로 쓰인 便은 옮기지 않은 편이 속이 편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에 함유된 미묘한 어의까지 팽개칠 수는 없다.
암튼, 위 일화에 의하면, 위진남북조시대 뒤닦이용 재료는 풀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