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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A 칼럼 - 자신의 생명마저 내 놓으신 진정한 어른(2011/05/25)
- 작성일2012/10/26 15:28
- 조회 654
해당 글의 작성 날짜 : 2011/05/25 10:25:16
제가 아는 어른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일화입니다.
1994년 10월 경 일입니다. 중앙지 한 모퉁이에 실린 기사 하나가 제 눈길을 잡아 끌었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단 상임지휘다인 정명훈씨가 납득 못할 사유로 해임되었는데, 이 뉴스를 전해들은 수원의 문화계 인사 한분이 정명훈씨 지지를 위해 신문사 한 곳에 일천만원의 격려 성금을 기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 우리 국민들의 정명훈씨 사랑과 격려의 물결이 봇물처럼 쏟아 졌음은 물론입니다.
그로부터 7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분은 8개월여의 억울한 옥살이를 겪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로 누명을 벗었지만,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그 분으로서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치욕이었고 씩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 후 삼천만원이 넘는 국가배상금이 나왔습니다. 그 분은 '다시는 나와 같이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데 써 달라'며 전액 관련 단체에 기탁하셨습니다.
그 분은 10여 년간의 공직생활 중 모친 사망과 자녀 혼사 등 모두 다섯 차례의 애경사를 치뤘습니다만, 한 번도 부의금이나 축의금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가장 최근, 자신의 장례식 때에도 어떠한 조화나 부의금도 받지 않도록 유언을 남기셨고, 유족들은 충실히 그 뜻을 따랐습니다. (대통령의 조화는 돌려보내는 것이 더 큰 결례라 생각하여 하나는 받았다고 합니다.)
그 분의 장례식이 있던 날, 승화원에서 화장된 유골이 항아리에 담겨 자신이 6년전 만든 가족 납골묘에 합장 안치되었습니다. 이미 매장되어 있던 부모님의 시신을 화장 한 후 하나의 남골묘로 모아 놓았던 곳이 었습니다. 그 가족 납골묘 옆에는 조그마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잇었습니다. 비문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씨족의 시조는 ㅇㅇㅇ 이신데, 지금까지 수 십대를 이어오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매장 문화로 인해 좁은 국토에 묘지가 늘어나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미 매장한 내 부모님까지 화장하여 가족 납골묘를 만들게 되었다. 나의 친족이야 이를 충분히 이해하시겠으나, 선조들께는 죄스러움을 금할 길 없다. 내가 죽어 조상들께 이 큰 죄를 빌 것이며, 이에 대한 후손들의 평가는 겸허히 받을 것이다....'
그 분은 필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아름다운 화장실운동의 전 세계 확산을 위해 자신의 생명마저 내어 놓으셨습니다. 진정한 어른이 안계시다는 이 시대, 저는 소리 소문없이 우리 사회의 의제(議題)를 앞장서 몸으로 실천하신 어른 한분을 가까이서 뵈어온 남다른 행운을 가졌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염태영(한국화장실협회 전문위원/ 전 청와대 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