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Q&A
고속도로 휴게소 예찬(2007/04/09)
- 작성일2012/10/26 13:39
- 조회 694
해당 글의 작성 날짜 : 2007/04/09 09:59:20
어머님을 모시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한 휴게소에 들렸다. 어머님은 “뭔 화장실이 호텔 같으냐. 그래도 화장실은 화장실인데 너무 심하게 잘 꾸몄어” 하신다. 분명히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은 그 어떤 공공 화장실보다 훌륭할 것 같다. 어떤 휴게소에는 우리 집에도 없는 비데가, 그것도 좌석이 따끈하게 덥혀지는 고급 비데를 설치해 놓았다. 공중화장실은 지저분한 것이 정상(?)인데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늘 깨끗하다. 당연한 현상이 아니라 사실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화장실에 꾸며 놓은 작고 예쁜 정원은 보너스라고 할까.
그리고 보니 화장실뿐이 아니다. 휴게소에서 먹은 음식들도 제법 훌륭하다. 내가 즐겨 찾는 어떤 휴게소는 밥이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가마솥에 밥을 했단다. 그리고 별도로 구수한 숭늉을 마련해놓곤 맘껏 드시란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늘어났고, 유모차를 비치한 곳도 많다. 야구연습장은 물론 골프연습장도 있다. 증거는 없지만 우리나라 휴게소보다 좋은 고속도로 휴게소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가 이렇게 (지나치게) 좋아진 것일까? 그 이유는 민영화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는 정부의 소유였다. 모든 공기업이 그렇듯이 이윤동기, 즉 효율성을 추구할 동기도 없었고, 휴게소들이 모두 같은 주인인지라 휴게소간 경쟁할 인센티브도 전혀 없었다. 하여 휴게소 화장실은 지저분하고, 음식은 형편없었으며, 고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애써 제공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휴게소별로 민간에게 매각한다. 이 단순한 정책변화가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를 세계 최고(?)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동네 음식점보다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이 질도 낮고 서비스도 나쁜 것을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동네 음식점이야 평판이 중요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은 한두 번 들르는 손님들이 주 고객인지라 평판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기 때문이리라. 이런 설명은 광활한 땅을 자랑하는 미국이나, 인접 국가들로 맘껏 여행을 다니는 유럽에 적절할 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좁은 국토에, 서울과 부산을 오고가는 고속도로는 뻔하고, 십 분 정도만 더 달리면 곧 다음 휴게소가 나온다. 즉 고속도로 휴게소간 경쟁이 제법 심할 뿐만 아니라, 휴게소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단순한 뜨내기가 아니라 제법 평판을 따지는 동네고객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영화는 자연스레 휴게소들로 하여금 고객유치를 위한 경쟁에 최선을 다하게 만든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깨닫는 것이 최선이라면, 그 반대로 경험하고도 깨닫지 못함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가 민영화와 경쟁도입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있음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히려 민영화와 경쟁도입이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음이 매우 안타깝다.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지상파방송 다섯 개 채널 중에 네 개가 정부소유인 공영(국영?)방송이다. 공익보호라는 명분을 기꺼이 인정한다고 해도 공영방송은 한 개 정도면 족할 것이다. 전력산업의 민영화와 경쟁도입은 시대를 역행하여 아무런 진전도 없다. 하여 우리나라 전기는 질에 비해 요금이 비쌀 뿐만 아니라, 여름만 되면 전력부족을 이유로 내가 돈을 주고 산 에어콘도 맘대로 쓰지 못하게 한다. 전력산업을 독점하도록 해준 것은 온 국민이 양질의 전기를 저렴한 가격에 맘껏 쓸 수 있게 하라는 의무에 대한 대가일 것인데 의무는 무시한 채 권리만 누리는 것이 우리나라 전력의 독점공급자의 행태다.
공기업 혹은 공사는 신이 내린 직장,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란다. 젊은이들은 공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고시 공부하듯 전력을 기울인다.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을 넘는 것은 보통이다. 왜 공기업이 이렇게 최고의 직장이 되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일의 강도는 낮으면서 월급은 높은데 경쟁압력으로 밀려날 위험도 별로 없으니 누군들 공사에 취업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의미가 무섭다.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두 세 사람이 하기에 일의 강도가 높지 않을 것이고, 별 일 안 해도 월급이 높은 것은 그 부담이 소비자, 즉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기업이 만들어내는 상품의 질과 서비스가 나쁘고 가격이 높아도 경쟁이 없어 공기업은 망하기는커녕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내린 축복의 일터이겠지만, 그들이 축복을 누리는 것은 온 국민이 그 축복을 감당하는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정말 대단하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우리나라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들러 각 휴게소가 제공하는 다양한 즐거움들을 맛보고 싶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휴게소들이 또 있을까? 정부가 주인 행세하는 대신 실질적 주인을 찾아주고, 독점 대신 경쟁을 유도했더니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가 이렇게 좋아졌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웬만한 집이나 회사 화장실보다 좋고, 밥도 맛있어졌고, 운전에 피곤한 몸을 야구나 골프로 개운하게 풀 수도 있다. 휴게소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지 각자 찾아보는 것도 재미일 것 같다. 휴게소 예찬은 곧 민영화 예찬이며 경쟁예찬이다. 정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 김재홍
그리고 보니 화장실뿐이 아니다. 휴게소에서 먹은 음식들도 제법 훌륭하다. 내가 즐겨 찾는 어떤 휴게소는 밥이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가마솥에 밥을 했단다. 그리고 별도로 구수한 숭늉을 마련해놓곤 맘껏 드시란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늘어났고, 유모차를 비치한 곳도 많다. 야구연습장은 물론 골프연습장도 있다. 증거는 없지만 우리나라 휴게소보다 좋은 고속도로 휴게소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가 이렇게 (지나치게) 좋아진 것일까? 그 이유는 민영화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는 정부의 소유였다. 모든 공기업이 그렇듯이 이윤동기, 즉 효율성을 추구할 동기도 없었고, 휴게소들이 모두 같은 주인인지라 휴게소간 경쟁할 인센티브도 전혀 없었다. 하여 휴게소 화장실은 지저분하고, 음식은 형편없었으며, 고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애써 제공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휴게소별로 민간에게 매각한다. 이 단순한 정책변화가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를 세계 최고(?)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동네 음식점보다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이 질도 낮고 서비스도 나쁜 것을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동네 음식점이야 평판이 중요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은 한두 번 들르는 손님들이 주 고객인지라 평판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기 때문이리라. 이런 설명은 광활한 땅을 자랑하는 미국이나, 인접 국가들로 맘껏 여행을 다니는 유럽에 적절할 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좁은 국토에, 서울과 부산을 오고가는 고속도로는 뻔하고, 십 분 정도만 더 달리면 곧 다음 휴게소가 나온다. 즉 고속도로 휴게소간 경쟁이 제법 심할 뿐만 아니라, 휴게소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단순한 뜨내기가 아니라 제법 평판을 따지는 동네고객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영화는 자연스레 휴게소들로 하여금 고객유치를 위한 경쟁에 최선을 다하게 만든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깨닫는 것이 최선이라면, 그 반대로 경험하고도 깨닫지 못함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가 민영화와 경쟁도입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있음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히려 민영화와 경쟁도입이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음이 매우 안타깝다.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지상파방송 다섯 개 채널 중에 네 개가 정부소유인 공영(국영?)방송이다. 공익보호라는 명분을 기꺼이 인정한다고 해도 공영방송은 한 개 정도면 족할 것이다. 전력산업의 민영화와 경쟁도입은 시대를 역행하여 아무런 진전도 없다. 하여 우리나라 전기는 질에 비해 요금이 비쌀 뿐만 아니라, 여름만 되면 전력부족을 이유로 내가 돈을 주고 산 에어콘도 맘대로 쓰지 못하게 한다. 전력산업을 독점하도록 해준 것은 온 국민이 양질의 전기를 저렴한 가격에 맘껏 쓸 수 있게 하라는 의무에 대한 대가일 것인데 의무는 무시한 채 권리만 누리는 것이 우리나라 전력의 독점공급자의 행태다.
공기업 혹은 공사는 신이 내린 직장,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란다. 젊은이들은 공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고시 공부하듯 전력을 기울인다.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을 넘는 것은 보통이다. 왜 공기업이 이렇게 최고의 직장이 되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일의 강도는 낮으면서 월급은 높은데 경쟁압력으로 밀려날 위험도 별로 없으니 누군들 공사에 취업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의미가 무섭다.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두 세 사람이 하기에 일의 강도가 높지 않을 것이고, 별 일 안 해도 월급이 높은 것은 그 부담이 소비자, 즉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기업이 만들어내는 상품의 질과 서비스가 나쁘고 가격이 높아도 경쟁이 없어 공기업은 망하기는커녕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내린 축복의 일터이겠지만, 그들이 축복을 누리는 것은 온 국민이 그 축복을 감당하는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정말 대단하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우리나라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들러 각 휴게소가 제공하는 다양한 즐거움들을 맛보고 싶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휴게소들이 또 있을까? 정부가 주인 행세하는 대신 실질적 주인을 찾아주고, 독점 대신 경쟁을 유도했더니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가 이렇게 좋아졌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웬만한 집이나 회사 화장실보다 좋고, 밥도 맛있어졌고, 운전에 피곤한 몸을 야구나 골프로 개운하게 풀 수도 있다. 휴게소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지 각자 찾아보는 것도 재미일 것 같다. 휴게소 예찬은 곧 민영화 예찬이며 경쟁예찬이다. 정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 김재홍